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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있는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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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있는 5명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있는 5명

Wed Oct 06 2021 05:26: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금세기에 금융 산업에서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는 비트코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비트코인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금융 분야를 재구성했으며, 사람들에게 중개인 없이 디지털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는 탈중앙화 플랫폼의 개념을 알렸습니다. 이에 당연하게도 비트코인은 명목 화폐와 관련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은 빠르고, 더 저렴하며, 수수료 비용을 두 번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금융 세계에서 혁신적이었던 발명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곧바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2009년, 비트코인은 사실상 0에 가까운 아주 작은 가치로 시작했으나, 현재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인 2021년 9월에는 하나의 비트코인이 $46,627.33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몇몇 국가들은 거래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 비트코인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2021년 9월 7일부터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은 법정 화폐입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간주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국가의 디지털 지갑에 가입하는 유저들에게 비트코인 30달러를 제공하는 암호화폐 프로모션까지 진행했습니다.

비트코인이 세계와 금융 업계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차세대 암호화폐 왕국을 세우기 위한 길을 닦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생각해봤을 때, 이 기술의 배후에 있는 천재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지셨을 것입니다. 물론 암호화폐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발전시키고, 비트코인을 만들어낸 사람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고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가명 뒤의 실제 비트코인 창시자의 정체는 아직도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사용자들은 사토시가 한 사람이 아니며, 비트코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룹명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혹은 그 사람들)이 누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금 더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트코인의 역사와 비트코인 창시자와 관련된 미스테리

비트코인의 역사는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금융 위기는 특히 중개인이 연루되어 있는 명목화폐로는 경제를 떠받들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던 사건입니다.

시작점

‘비트코인: 개인간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백서는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2008년 10월 31일에 암호화 메일 리스트에게 공유되었습니다. 백서에는 암호화 기술과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하여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의 단점을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제안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을 통하면 거래의 처리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거래는 보다 더 안전해지며, 환율은 더욱 유리해집니다. 이와 동시에 제 3자를 제거하고, 데이터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상태로 유지됩니다.

체인에 연결된 첫 번째 블록

백서가 출판된 며칠 후, 비트코인 창시자는 오픈소스 코드 플랫폼 SourceForge에 프로젝트를 등록했습니다. 이후, 2009년 1월 3일에 첫 번째 비트코인 블록인 제네시스블록이 채굴되었습니다. 이것이 계획된 공급량인 2100만 비트코인에서 최초로 채굴된 50개의 비트코인입니다.

사토시는 제네시스블록 내에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2009년 1월 3일, 더 타임스, 은행들의 두번째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는 U.K 재무장관)’이라고 읽히는 메시지를 남겼으며, 이 메시지는 곧바로 런던 타임스지의 헤드라인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현재 화폐 시스템에 대한 평가라고 해석하기도 하며, 몇몇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생성된 시간이 명시된 타임스탬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당시 첫 거래로 역사를 만들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첫 번째 거래는 2009년 1월로, 할 피니(Hal Finney)라는 개발자에게 전송된 10BTC 트랜잭션이었으며, 이후 이 개발자가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미 나카모토 본인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2013년 3월,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피네이는 직접 BitcoinTalk라는 비트코인 포럼에서 자신은 사실 마비가 있어 사람들이 찾던 사토시 나카모토가 될 수 없음을 밝혔습니다.

작별인사

2011년, 사토시 나카모토는 동료 개발자들에게 자신이 ‘다른 분야로 넘어갔으며’, 비트코인의 미래를 ‘좋은 손’에 남겨 두었다는 작별인사를 전송했습니다. 이 메시지 이후, 그가 마치 공기 중으로 사라진 것처럼 아무도 그의 소식에 대해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비트코인 창시자가 본인의 정체를 숨긴 이유에 대해 궁금하실 것입니다. 전 세계를 변화시킨 기술을 개발해낸 사람은 대중에게 널리 공개되고, 창시자는 결과물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상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토시의 경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는 비트코인의 근본적인 개념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가 가명 뒤에 숨는 이유

비트코인 백서에 적힌 첫 문장은 ‘순수한 개인 대 개인 버전의 전자 화폐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직접 전달되는 온라인 결제를 실현한다.’입니다. 이 문장에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이 온전히 탈중앙화된 거래 시스템이 되길 원했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모든 시스템을 총괄하는 중앙화된 기관은 존재하면 안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창시자를 알아낸다면, 비트코인 창시자를 암호화폐의 핵심 인물로 여기게 될 것이고, 이는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특성을 희미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봤을 때, 사토시가 비트코인의 탈중앙화를 보장하기 위해 떠났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이유인 것처럼 들립니다.

또 다른 이유로 추정되는 사건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의 비트코인 트랜잭션에서 보낸 사람의 주소 코드만 남겨두고,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프로그램의 안전성과 익명성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화폐를 실험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충돌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사토시 나카모토는 당국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마지막 이유일 수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 발행 입찰을 조작하는 것 뿐만 아니라 디지털 화폐에도 간섭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예시로는 2007년에 연방 정부가 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판매하는 회사인 e-Gold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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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은 계속된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더더욱 비트코인 창시자를 궁금해했으며, 필사적으로 창시자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심지어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언어 및 행동 연구까지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사토시가 영국에 사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식 영어보다 영국식 영어를 선호하는 듯 했으며, 전형적인 영국식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마침표 이후 스페이스를 두 번 사용하는 독특한 행동 방식도 있습니다. 포스팅 패턴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동부 혹은 중앙유럽 시간대에 산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룹일까 개인일까?

미국의 컴퓨터 보안 연구원인 댄 카민스키(Dan Kaminsky)와 세계암호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Cryptologic Research) 이사인 스튜어트 하버(Stuart Haber)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혼자가 아니며, 그룹을 대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을 만들어낸 방식으로 판단했을 때, 그들은 굉장히 놀라운 수준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토시는 비트코인이 정확히 세 번 작동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9페이지의 기술 문서에 암호학에 대한 하버의 논문과 조사를 언급하였습니다. 하버는 사토시가 누구인지간에, 그 사람들은 학술 논문을 읽고 그의 연구로부터 개념을 결합하는 데에 시간을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토시는 경제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및 암호학에 정통했으며, 이것이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혼자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러나, 나카모토가 언급된 모든 분야의 지식을 습득한 천재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사실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확인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의 가면 벗기기: 누가 될 수 있을까요?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특징보다 더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비트코인 설립 직후 사라진 창시자의 정체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카모토 사토시가 누구인지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비트코인 창시자일 가능성이 있는 5명의 인물을 확인해 보세요.

마이클 클리어(Michael Clear)

마이클 클리어는 비트코인 창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제에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개인 중 한 명입니다. 클리어는 23세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재능이 뛰어난 졸업생입니다. 그는 암호학을 공부했으며, 10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왔습니다. 또한 비트코인 언어인 C++ 언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하게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다른 학생들은 연구에 사진이나 개인 정보를 게시했으나, 클리어는 이메일 주소만 게시했습니다.

마이클 클리어는 알 수 없는 비트코인 창시자의 면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 하나 때문에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 받았습니다. 2011년, 조슈아 데이비스(Joshua Davis)라는 기자는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조슈아는 사토시가 암호학에 굉장한 지식을 보유한 점을 감안했을 때, 2011년도 가장 큰 크립토 행사에 참여한 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스는 참가자들의 배경을 조사했고, 마이클 클리어를 포함한 사토시일 가능성이 있는 영국과 아일랜드인 9명을 찾아냈습니다. 그 중 6명은 비트코인을 부정하는 입장이었고, 클리어 외 다른 2명은 대형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력이 없었기에, 클리어만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후보가 되었습니다.

클리어는 2008년, 트리니티 칼리지 최고의 컴퓨터공학 학부생이었음을 주목해봐야 합니다. 2009년도에는 Allied Irish Banks에 고용되어 화폐 거래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그는 개인간(P2P) 기술에 대한 연구 논문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이 논문을 읽는 전문가들에게는 마이클이 암호화, P2P 네트워크 및 경제학에 정통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그는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그의 모든 자질이 사토시 나카모토와 일치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숨겨진 천재

마이클 클리어는 데이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남들에게 정보를 최소한으로 공개하며, 데이비스가 그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인정했습니다. 데이비스는 또한 클리어의 개인간 기술에 대한 연구가 비트코인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재 동형암호에 집중하고 있으며, 최근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습니다.

당시 경제 위기에 대응하여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데이비스는 클리어가 Allied Irish Banks에서 근무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경제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클리어는 단호하게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비트코인이 향후 금융 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클리어는 비트코인의 자체적인 가치가 먼저 입증되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데이비스는 클리어가 비트코인 창시자인지 질문했습니다. 클리어는 웃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의 디자인을 검토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코드에 대한 링크를 요청하지 않고도 직접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배후가 될 수 있는 다음 인물으로 빌리 레돈비르타(Vili Lehdonvirta)를 지목했습니다.

빌리 레돈비르타(Vili Lehdonvirta)

마이클 클리어에 따르면, 헬싱키의 Institute of Information Technology에서 핀란드 교수로 재직 중인 빌리 레돈비르타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측되는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클리어는 정보기술에 있어서 그의 기술을 고려했을 때 빌리야말로 사토시 나카모토와 딱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요커지의 기자인 조슈아 데이비스는 빠르게 크립토 2011 컨퍼런스에서 빌리 레돈비르타를 인터뷰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빌리는 게임 개발자였으며, 이후 가상 화폐 연구 분야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그의 지식은 그를 사토시 나카모토 후보자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빌리는 비트코인은 ‘천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도 사토시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다고 얘기하면서 그가 사토시라는 추측을 웃으며 부정했습니다. 빌리는 비트코인을 실현시키는 데에 필요한 암호학과 C++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비트코인을 창시하기 위해서는 크립토 전문가여야 하나, 그는 전문가가 아니라고 언급했습니다.

걱정스러운 비트코인의 사용

레돈비르타는 가상화폐 역할로의 비트코인을 연구했으며, 대규모의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만이 정부의 눈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기에 비트코인이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이 자금 전송, 저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사람들이 현금을 익명으로 보관할 수 있게 한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Electronic Frontier Finland의 고문이사 중 한 명인 레돈비르타는 비트코인이 개인정보를 ‘너무 심하게’ 보호하며, 절대적이고 건드릴 수 없는 금융 개인 정보를 갈망하는 유일한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그는 필요한 경우 법 집행 기관이 중재할 수 있도록 비트코인에 백도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레돈비르타는 조슈와 데이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의 유저를 흥미롭게 하는 것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의 미스테리한 배경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빌리는 이것이 마케팅 수법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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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빈 안드레센(Gavin Andresen)

사토시 나카모토가 2011년에 떠났을 때 개빈 안드레센에게 바톤이 넘어왔고, 개빈 안드레센이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냐는 추측이 생겨났습니다. 만약 그들이 동일 인물이라면, 이것이 바로 사토시로 향한 주목을 피할 수 있으면서, 비트코인에서 완전히 손을 놓지 않아도 되는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랙티브형 크립토 웹사이트인 Zy Crypto가 수행한 문체 연구에 대한 여러 증거에 따르면, 개빈의 글은 다른 후보들과 비교했을 때 사토시의 문체와 가장 닮아 있습니다.

개빈이라는 추측을 반박하는 유일한 점은 크레이그 라이트(Craig Wright)가 자신이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주장했을 때, 라이트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인다고 하면서 속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빈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추측과 개빈 본인 사이에 거리를 두려는 계략일 수 있습니다.

할 피니(Hal Finney)

사토시 나카모토가 될 수 있는 후보자들 사이에서 할 피니는 가장 유력한 후보입니다. 그는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발표했을 때 처음으로 대응한 사람이며, 비트코인 거래에 연관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비트코인을 완벽히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아무도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할 피니는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 저명한 문자 분석기관인 Juola & Associates가 그의 글 쓰는 스타일이 나카모토의 스타일과 일치한다고 발견한 점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상징

사토시 나카모토로 태어났으며, 현재는 도리안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 사는 집과 할 피니가 거주하는 곳이 두 블럭 떨어져 있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이러한 주장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처음에 도리안이 비트코인 창시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도리안의 집이 은행에 의해 압류된 이후 피니의 필명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의한 피해자의 상징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을 차용한 것입니다.

도리안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될 수 없는 이유로는, 도리안은 그가 비트코인을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할 피니 또한 이러한 주장을 반박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닉 재보(Nick Szabo)

비트코인 창시자의 정체를 온라인으로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될 이름은 바로 닉 재보일 것입니다. 그의 글 쓰는 스타일은 사토시와 스타일이 비슷하여, 사토시로 추측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보는 비트코인의 전신과 가장 비슷한 ‘비트 골드’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비트 골드의 개발에서 볼 수 있듯이 능력 측면에서 굉장히 뛰어납니다.

2008년, 재보는 그의 블로그에 비트 골드의 라이브 버전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공유했던 점이 밝혀졌습니다. 재보가 이를 게시한 몇 개월 이후, 비트코인이 등장했고 전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재보가 2008년에 게시한 블로그 글에는 영국식 영어를 선호한다는 점, 실수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문법을 구사한다는 점 등에서 사토시 나카모토의 모든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비트 골드에 대한 재보의 작업을 거론하지 않기로 한 사토시 나카모토의 결정입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것과 같이,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있는 여러 인물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자신이 사토시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반박했으나, 그건 아무도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사토시가 얼굴 없는 인물로 남아있기로 결정했다면, 그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그 사람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계속 추측할 것인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기면서 살아갈 것인지가 남아 있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의 정체를 증명하는 방법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심지어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알려진 인물들은 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음 사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은 사토시인지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개인일 뿐인지 둘 중 하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위치에 있게 됩입니다.

제네시스 블록에 대한 액세스 키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암호학자인 매튜 그린(Matthew Green)에 따르면,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최초의 50 비트코인이 채굴되었던 블록체인의 첫 번째 블록에 접근할 수 있는 액세스 키를 보유했는지 여부입니다.

이론적으로 블록의 데이터는 비트코인 창시자만 소유하고 있는 암호화 코드가 포함된 개인 키 조합에 의해 제어됩니다.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50개의 비트코인(지금까지 전송된 적 없음) 중 하나를 다른 주소로 옮길 수 있다면, 이 사실은 그가 실제 비트코인 창시자라는 힌트가 될 것입니다.

동일한 주소로 거래

최초의 암호화폐 트랜잭션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10BTC를 할 핀니에게 보낸 2009년 1월 12일에 발생했습니다. 만약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최초 BTC를 보냈던 동일한 주소를 사용하여 비트코인을 전송할 수 있다면, 개인 키는 단 하나뿐이기 때문에 사토시의 정체는 확인된 것입니다.

비트코인 창시자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비트코인 창시자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몇 가지 단서를 남겨두었습니다. 아래에서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살펴보세요. 

  • 사토시 나카모토의 트랜잭션 주소(12cbQLTFMXRnSzktFkuoG3eHoMeFtpTu3S)는 할 피니와 최초로 거래했을 때 추출되었습니다. 이는 이 주소의 트랜잭션으로 추적되는 인물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 본인 또는 그룹일 것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 가장 작은 비트코인 조각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이 조각은 사토시(sat)로 불리며, 0.00000001BTC 또는 비트코인의 백만 분의 1 값을 가집니다. 이 명칭은 2008년 본인을 Reebok이라고 부르는 비트코인 개발자에 의해 제안되었습니다.
  • 비트코인의 면면을 알고 있는 개발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세르지오 데미안 러너(Sergio Demian Lerner)는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추정되는 유저는 오로지 500 비트코인만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2015년, 사토시 나카모토는 UCLA 재무 교수 바그완 초드리(Bhagwan Chowdhry)에 의해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이 미스테리가 끝나긴 할까요?

안타깝지만, 이 미스테리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본인을 드러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는 완벽한 타이밍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때까지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발한 것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암호화폐 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가 가면을 벗고 그의 비밀을 공개할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창시자가 숨어 있다면, 그가 빠른 시일 내에 어둠 속에서 나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 창시자는 금융 시스템을 재편한 혁신적인 기술을 남겨 두었습니다!

작성자: Ana Gabrielle Gund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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